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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February 06, 2013

아베 신조와 극우 역사수정주의자는 세계의 적이다 「成澤宗男: 安倍晋三と極右歴史修正主義者は、世界の敵である」韓国語版

1月2日投稿記事「成澤宗男: 安倍晋三と極右歴史修正主義者は、世界の敵である」の韓国語版を紹介します。翻訳いただいた金蘭美さんに感謝いたします。

 日本語版 「成澤宗男: 安倍晋三と極右歴史修正主義者は、世界の敵である」
 English Version Abe Shinzo, a Far-Right Denier of History
 中文 安倍晋三 - 极右历史窜改主义者是世界和平的最大敌人

 
 
아베 신조와 극우 역사수정주의자는 세계의 적이다
 

주간 금요일 기획위원 나루사와 무네오
 
번역 김 란미

2013

서장

 일본군에 의한 난징대학살이 일어난 지 75년을 맞는 2012년의 12, 이 끔찍한 사건을 역사의 기억 속에 각인해 전달해 감으로써 두 번 다시 일본이 타국과 전쟁을 하지 않고, 동아시아의 평화를 이뤄 내기 위한 교훈으로 삼으려 했던 적지 않은 일본인들에게는 너무도 큰 시련이 주어졌다.  

 같은 달 16일에 실시된 총선거의 결과, 지난 2009 8월 총선거에서 패배해 야당으로 전락했었던 자유민주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면서 정권을 되찾았다. 게다가, 수상의 자리 앉은 것은 다름이 아닌 극우역사수정주의자인 아베 신조였다. 더는 일본 국내만의 일이라고 할 수 없는 단계가 되었다. 

왜냐하면, 자민당은 아직도 일본군에 의한 가해의 기억이 선명한 중국이나 한국, 북한과 같은 나라에 대해서 이 기억 자체가 마치 역사적 정확성이 부족하고, 일본이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이웃 나라들의 목소리는 부당한 생트집이며, 거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자학적이라 주장하는 역사수정주의자들의 소굴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자민당의 이러한 수치스럽게 여겨야 할 체질을 가장 확실하게 상징하는 것이 아베총리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1951 9월의 대일강화조약의 조인함으로써 국제사회에 복귀했는데, 그것에 대한 일본으로부터 피해를 당한 아시아 여러 나라의 전제 조건은 일본이 대일본제국과 결별하고, 자기들의 행위를 가해자로서 이웃 나라에 마음으로부터 사죄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후의 독일연방공화국의 출발점이 나치즘과의 결별과 홀로코스트에 대한 사죄였던 것에 반해, 전후 일본 거의 계속해서 여당으로 군림해온 자민당은 항상 역사수정주의자의 거점이었으며 지금도 그것은 전혀 변함이 없다 

아마 세계는 홀로코스트는 없었다따위의 주장을 하는 정치가가 독일의 수상으로 취임한다고 하는 사태는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난징대학살로부터 75년이 지난 현재, 세계가 목격한 것은 일본의 총리가 난징대학살은 허구라고 주장하는 역사수정주의의 편에 선 정치가라고 하는 놀랄만한 광경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 의해 수많은 사람이 희생을 당하고, 그 목격자, 체험자도 아직 생존해 있는 아시아의 국민, 또한 북미를 비롯한 아시아계 커뮤니티의 사람들은 이 극우 역사수정주의자 총리에게 난징대학살은 허구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일본이 이웃 나라를 침략했다고 하는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는가?라고 재추궁할 정당한 권리가 있다. 

특히 한국이나 북한, 그리고 세계의 코리안에게 있어서는 난징대학살에 필적하는 대일본제국이 저지른 가장 잔인하고 수치스러운 범죄 중 하나인 종군위안부에 대해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라고 아베총리를 추궁하는 것이 급무이다. 왜냐하면,  총리는 지금도 공교육의 역사 수업에서 종군위안부의 기술을 삭제하는 것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물이 총리인 이상, 일본의 국제사회 복귀로부터 61년이 지나려고 하고 있는 오늘날, 다시 한번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만한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의 정당성이 근본적으로 추궁되어야 할 것이다. 이 일은 무엇보다도 먼저 일본인이 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앞서 이야기했듯이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의 국민은 그것을 추궁할 정당한 권리가 있음이 분명하다.

 
1 아베라는 정치가 

 아베총리는 자민당 안에서도 특이한 존재이다. 그는 외무대신 등 요직을 역임하고 자민당의 총재후보자의 한 사람이기도 했던 부친 아베 타로의 힘으로 1993년에 첫 당선을 한 이후, 일관해서 당내 유수의 극우수정주의자로서 행동함으로써 현재의 지위를 얻었다고 볼 수 있다. 이하 그 경력을 열거하겠다.  

아베는 당선 직후인 1993 8, 자민당의 「역사검토위원회」의 위원이 된다. 위원회」에서는 우익 학자를 초빙해 20회 정도의 회합을 가지고, 그 검토내용을 정리해 1995 815일본의 종전기념일대동아전쟁 총괄이라는 책을 출판한다. 그 책에는 ①「대동아전쟁」(아시아태평양전쟁은 침략 전쟁이 아니라, 자존자위의 전쟁이며, 아시아 해방 전쟁이었다. 난징대학살, 위안부등의 가해 사실은 꾸며내진 것이며, 일본은 전쟁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가해 책임도 없다. 교과서에는 침략이나 가해에 대한 있지도 않은 사실에 관한 기술이 있어, 새로운 교과서 싸움」(교과서를 기술이편향되어 있다라고 공격한다이 필요하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현재의 아베 총리도 같은 인식이다.  


패전 후 50년이 되는 19958월에 침략 전쟁에 대한 반성이 담긴 국회결의가 채택되려는 움직임에 반대해 「역사검토위원회」의 멤버를 중심으로 한 우파의 종전 50주년 국회의원 연맹199412월에 결성되었을 때, 아베는 사무국장대리로 발탁된다. 의원연맹은 신도계를 중심으로한 극우 종교집단과 연계해 종전 50주년 국민운동 실행위원회를 운영해 일본은 침략 국가 아니었다」「전쟁에 대한 반성결의에는 반대한다는 주장을 담은 결의를 전국 26개현 현의회와 90개 시구동의 의회에서 가결시켰다.

당내의 이러한 우파의원은 1996 6월 역사교과서에 대한 공격을 위해 밝은 일본 국회의원 연맹을 결성해 아베는 사무국장대리가 된다. 게다가 아베는 1997 2월에 결성된 같은 역사 교과서에 대한 공격을 특화한 일본의 전도와 역사 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들의 모임」(2004년에 일본의 전도와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의원의 모임으로 개명의 사무국장이 되었다.

아베는 항상 이러한 그룹의 선두에 서서, 종군위안부는 매춘부라고 하며 역사 교과서에서 종군위안부나 난징대학살에 대한 기술을 삭제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교과서를 검정하는 문부과학성의 관료뿐아니라, 교과서 회사의 사장이나 교과서 집필자에게도 침략전쟁이나 종군위안부에 관한 기술이 왜곡되었다등 추궁하여 삭제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아베가 관방장관이었던 2001 1 30, 일본의 공공방송인 NHK가 방영했던 프로그램 전쟁을 어떻게 심판할까(2)추궁되어지는 전쟁 성폭력의 제작에 사전 개입해 종군위안부를 다룬 부분에 대해 NHK방송국장에게 심한 내용이다」「공평하고 객관적인 방송을 하도록」「그걸 못한다면 그만둬라라고 공격했다. 그 결과, 프로그램의 내용이 크게 변경되었다. 변경된 내용에는 2000 12월 동경에서 개최된 여성 국제전범 법정석상에서 일본군에 의한 강간과 위안부제도가 인도적인 범죄를 구성한다고 인정되어 일본국과 쇼와천황에게 책임이 있다는 부분이 전면적으로 삭제되었다.
 

2 「고노 담화에 대한 공격 

 미야자와 기이치가 총리였던 1993 8 4위안부관계 조사결과 발표에 관한 고노 내각관방장관 담화」(고노 담화가 발표된다. 담화에서는 관방장관인 고노 요오헤가 대체로 이하와 같은 내용을 전달했다.  

조사 결과, 장기적 또한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위안소가 설치되어, 수많은 위안부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인정되었다. 위안소는 당시의 군당국의 요청으로 설치 운영되었으며,  위안소의 설치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는 구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으로 관여했다. 위안부의 모집에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들이 주축이 되었지만 그 경우에도 달콤한 말로 꼬이거나 강압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모집한 사례가 많으며, 더우기, 관헌등이 직접 여기에 가담한 일도 있음이 밝혀졌다. 또한 위안소에서의 생활은 강제적인 상황아래서 처절한 것이었다  

이 고노 담화에 대해 같은 자민당이면서도 가장 격렬하게 공격한 것이 아베였다
 

아베는 일본의 전도와 역사 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들의 모임과 계획을 짜고, 회합에 고노를 불러, 확실한 증거도 없이 상대방이 요청한 대로강제성을 인정했다는 등담화를 공격했지만, 고노는 굴하지 않았다. 또한 아베는 1997 5 27일에도 중의원 결산위원회에서 종군위안부는 강제라는 측면이 없다면 교과서에특기할 필요는 없다. 이 강제성에 대해서는 전혀 검증할 문서가 나오지 않았다라고 발언했다.

아베는 간사장 당시인 2004 6 14일본의 전도와 역사 교과서를 생각하는 의원의 모임이 주최한 심포지움 석상에서 고노 담화 무시하고, 종군위안부라는 역사적 사실은 없었다라고 단언하고, 문부과학성에 대해서도 교과서 개선종군위안부기술 삭제에 대한 요청을  적극적으로 해 나갈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3 총리시절의 말 바꾸기  

아베는 2006 9 26일 총리에 선출된다. 하지만 한 나라의 대표로서  이전의 극우 역사수정주의자의 자세을 관철해 가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가 있었다. 그러한 자세는 자민당이나 일본 국내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국제사회에서는 커다란 혐오감과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은 뻔했다. 특히 아베가 추태를 드러낸 것은 종군위안부를 둘러싼 문제였다. 

아베는 2006 10 4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고노 담화에 대해 정부의 기본적인 입장은 고노 담화를 계승하는 것이다라고 답변했다. 여기에 대해 아베를 지지해 온 우파세력으로부터 비판이 일었기 때문인지, 2007 3 5일의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고노 담화를 앞으로도 계승해 가겠다라고 하면서도 관헌이 집에 들어가 끌고가듯이 데려갔다는 강제성, 협의의 강제성을 뒷받침할 증언은 없었다라고 답변해 고노 담화의 강제성에 대해 수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비쳤다.

미하원의회에서 2007 1 31「『위안부 문제로 일본정부에 대해 사죄를 요구하는 결의안이 민주당 마이크 혼다 의원에 의해 제출 되었을 때, 아베는결의가 채택되더라도 사죄할 생각은 없다」「위안부를 일본군 병사가 납치강제했다고 하는 협의의 강제성의 증거는 없다라는 주장을 거듭했다. 고노 담화자체가 정부의 이름으로 종군위안부로서 수많은 고통을 당하고, 심신에 걸쳐 가시지 않을 상처를 입은 여러분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말씀드립니다라고 사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다. 게다가 강제되어진게 아니라 그녀들이 마치자주적으로 일본군 병사를 상대했다라고 말하는 듯한 이 발언은 미국의 뉴욕타임즈로스엔젤레스 타임즈, 보스톤 글로브등 각지에서 비판을 당했다.

그때문인지, 결국 아베는 외국(특히 구미의 눈을 끝까지 무시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영국 BBC 2007 4 27일 미국을 방문한 아베가 부쉬대통령과 캠프 데이빗에서 회담했을 당시 강제적으로 위안부들이 심히 잔혹한 상황에 놓여진 것에 대해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한다.  (I feel deeply sorry that they were forced to be placed in such extremely painful situations.)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미국 뉴스위크 430일 호는, 방미에 앞서 아베를 인터뷰한 기사를 게재했는데, 아베는우리들은 전시하의 환경에서 종군위안부로서 고난과 고통을 강요당한 분들에게 책임을 느끼고 있다.(We feel responsible for having forced these women to go through that hardship and pain as comfort women under the circumstances at the time.)라고 했다. 여기에서는 강제성을 분명히 인정하고 있으니 이랬다 저랬다 한다는 비판을 받아도 어쩔수 없다.   

4 또다시 으르렁거리기 

 아베는 2007 9 12일 국회에서 소신표명 연설을 한 직후, 각당의 대표질문을 받는 당일에 돌연 정권을 내던지고, 사임하는 전대미문의 추태를 부렸다. 여론으로부터는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당했지만 뭐든지 잘 잊어버리는 국민성의 도움을 받아 2012 9 26일 다시 자민당 총재로 선출되었다. 그것을 전후로 해서 이전의 총리시절에 보수파나 우익을 실망시켰던 실패한 역사수정주의의 오명을 씻으려는 듯 또다시 우익적 언동의 강도를 높여간다. 

나고야 시장인 가와무라 다카시 씨가 2 20일 중국 공산당 난징시 위원회의 간부와 면담한 자리에서 「소위 난징사건이란 없지 않았느냐라고 말해 큰 문제가 되었다. 여기에 대해 우익세력은 3 6, 동경도내에서 「『가와무라 발언 지지 난징학살의 허구를 찌르다라는 제목으로 긴급 국민집회를 열었는데, 아베는 거기에 가와무라 지지라는 메세지를 보냈다. 게다가 같은해 8 3일과  9 24일에는 우익세력의 기관지라고 할 수 있는 산케이신문에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시장의 난징 발언을 지지하는 광고를 게재했는데 아베는 그 주모자 가운데 한사람이다.

2012828일자 산케이신문에서 아베는 총리시절에 자신이 계승해 가겠다라고 명언한 바 있는 가와무라 담화에 대해서, 또 말을 바꾸어 「(자민당이 여당에 복귀하면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정부로서 견해를 새로이 나타낼 필요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그검토의 대상은 1982826일에 미야자와 기이치 관방장관이 교과서 검정에 있어서는 근린 아시아 제국가와의 근현대의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경우에는 국제이해와 국제협력의 견지에서 필요한 배려가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정한 미야자와 담화」=「근린제국조항, 패전으로부터 50년이 지난 1995815,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가 발표한 무라야마 담화」가 포함되어 있다.  

이 무라야마 담화에는「우리나라는 먼 과거의 한 때, 국책을 잘못하여 전쟁의 길을 걸어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떨어뜨리고 식민지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의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막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나는 미래에 잘못을 하지 않기 위해 의심할 여지 없는 이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에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마음으로부터 사죄의 마음을 표명하는 바입니다. 라고 적혀있다. 역시 이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서도 아베는 수상시절 정부의 인식이라고 답변한 바 있다. 

또한, 아베내각의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1227일의 기자회견에서 「가와무라 담화」에 대해, 「학자나 전문가의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검토를 거듭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검토할 의사를 내비쳤다. 전 총리시절에 한 번은 실질적으로 인정했었던 종군「위안부」의 「강제성」을  또다시 문제삼을 가능성이 높다. 관방장관은 이 회견에서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서는 「역대 내각의 입장을 이어갈 생각이다」라고 말했지만, 그로부터 3일 후인 12 30, 아베는 산케이신문의 단독 인터뷰에 응해 「무라야마 담화는 사회당 총재인 무라야마 총리가 발표한 담화이다. 21세기에 맞는 미래지향적인 담화를 발표하고 싶다」라고 했다. 아베는「무라야마 담화」가 발표된 당시, 담화를 비판했지만, 전 총리시절에는 「계승하겠다」라고 말을 바꿨고, 총리를 그만둔 뒤에는「재검토하겠다」라고 공언했다. 그리고 총리로 다시 돌아오더니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계승하겠다」와 「재검토하겠다」라는 모순된 메세지를 세상에 던지고 있다 

2012 410, 자민당 본부에서 당의 「문부과학부회 일본의 전도와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의원연맹의 합동회의가 열렸다. 거기에서는 문부과학성의 담당자가 불려와 고등학교 교과서 검정에 대해 보고했는데, 아베는 종군「위안부」관련 기술에 대해 「동원되었다」「끌려갔다」라는 기술이 있다며 비난하고, 「내가 총리였을 때 이른바 종군위안부의 강제연행은 없었다라고 국회에서 답변했는데, 도대체 언제 변경했느냐? 왜 (정부답변을)무시하느냐? 」라고 다그치며, 다시 「강제성」을 문제시 삼았다. 아베에 의하면, 종군「위안부」에 대한 기술을 하게 되면, 「상식과는 거리가 먼 교과서」(2012 5 10일에 동경도내에서 열린 우익 집회에서의 발언)가 된다고 한다. 또한 같은 합동회의 석상에서 자민당 의원들은 중학교 교과서에서는 종군위안부에 관한 기술이 삭제되었는데 왜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기재되어 있느냐며 잇따라 비판했다. 

더우기, 「『이른바 종군위안부의 강제연행은 없었다 라고 국회에서 답변했는데 도대체 언제 변경했느냐라는 아베의 주장은 이상한 것이다. 아베가 말하고 있는 것은 전 총리시절, 츠지모토 기요미 중원의원의 질문서에 대해 2007 3 16일의 각의결정을 거친 답변서를 말하는 것이다. 그 답변서에서는 가와무라 담화에 대해 정부의 기본입장은 관방장관의 담화를 계승하는 것이다라고 확실히 밝히고 있다 

가와무라 담화에서는 위안부의 모집에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들이 주축이 되었지만 그 경우에도 달콤한 말로 꼬이거나 강압을 가하는 등 당사자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모집한 사례가 많으며, 더우기 관헌등이 직접 거기에 가담한 경우도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모집과 이송 관리등에 있어서도 감언과 강압을 가하는 등 전반적으로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이루어졌다라고, 강제성을 인정하고 있다. 

아베총리 시절인 2007년의 답변서에서는 정부가 발견한 자료 중에는 군이나 관헌에 의한 이른바 강제연행을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어떤 기술도 발견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특별히가와무라 담화와 다른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가와무라 담화작성에 관여한 이시하라 노부오 부관방장관은, 다음과 같이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들은 통달이나 지령이라고 하는 문서적인 증거, 즉 강제성을 입증할만한 물적 증거는 결국 발견하지 못했지만, 실제로 위안부였던 16명의 조사 결과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다,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위안부가 되었다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기 때문에, 조사단의 보고를 기반으로 정부로서는 강제성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했던 것입니다」(아시아여성기금 오럴히스토리 프로젝트의 인터뷰 2006 3 7 

따라서, 아베가 지금에 와서, 교과서에 동원되었다」「끌려갔다라는 기술이 있는 사실에 발끈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자료가 아니라, 종군위안부가 된 여성들의 조사를 통해 그러한 기술이 입증되어진 것이므로 하나도 이상할 것은 없다. 변경따위가 없었던 것은 아베 자신을 포함한 역대내각이 가와무라 담화계승한다는 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아베는 겨우 5년 전의 자신이 한 행동의 의미를 모를 정도로 어리석은 것인가? 

아베는 2012 12 26일 신내각의 각료를 발표했는데 19명의 각료중, 일관해서 교과서에서 종군위안부나 난징대학살 기술을 삭제시키는 책동을 계속해 온 일본의 전도와 역사 교육을 생각하는 의원의 모임의 멤버가 약 반수인 9명이 입각했다. 더우기 신도세력을 중핵으로하는 일본 최대의 우익단체인 일본회의와 연계되어 있는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에 가입해 있는 각료는 아베를 포함해 실로 13명이나 있다. 이것은 아베 신내각의 극우적 셩격을 웅변적으로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베가 임명한 신내각에서 가장 경계할 필요가 있는 사람 중 하나는 시모무라 히로후미이다. 그는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의 간사장이며,  극우 역사수정주의자로서 아베와 함께 일관해서 「교과서 공격을 해 왔다. 아베가 다시 자만당 총재로 선임된 직후에 신설된 교육재생실행본부의 본부장이며, 이번 총선거에 있어서 ①자학역사에 근거한 편향적 교육의 중지, 미야자와 담화에 의한 교과서 검정의 근린제국조항의 폐지, ③애국교육의 강화, 라고 하는 교육에 관한 공약을 작성했다. 시모무라씨는 일본의 침략역사를 인정하거나 반성하는 일이 자학사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앞으로 일본의 역사 교과서의 기술이 어떻게 개악될 것인지, 국내외의 주시가 필요할 것이다.
 

5 세계가 앞으로 일본을 경계해야만 하는 이유 

아베는 다시 총리가 되어 또다시 일본국내에서는 극우 역사수정주의자로 행동하면서 미국에 가면 굉장히 죄송하게 생각한다라든지 책임을 느낀다라는 등 말바꾸기를 할 것인가. 일본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사람들은 그것을 결코 용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베는 2012 8 28일 텔레비전에 출연해 가와무라 담화를 그대로 유지하면 한국과의 진정한 우호관계를 맺을 수 없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아베와 같은 인물이 총리가 되어 유력정치가로 있을수 있고,  더우기 자민당과 같은 수치를 모르는 도당이 지배하는 한, 일본에 대해서 영원히 진정한 우호관계를 쌓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나아가서는 전 세계 국민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다시 한번 반복한다. 아베와 같은 극우 역사수정주의자들이 권력의 정점을 쥐고있는  일본이 지금 생각해야 할 것은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자격이 있느냐 없는냐이다. 

  시모무라는 2012 10 3일 아파호텔 체인의 오너와의 회담에서 지난 아베 정권이 내걸었던 『전후 레짐으로부터의 탈각』은 동경재판사관이나 가와무라 담화, 무라야마 담화등 일본의 근현대사 전부를 재검토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동경재판사관이란, 아베나 시모무라 등 극우 수정주의자가 자주 입에 담는 말인데, 요컨대 일본을 침략국가로 심판했던 1946 5 3일에서 1948 11 12일까지 열렸던 극동군사재판은 승자에 의한 심판이며, 일본을 침략국가로 심판한 것은 인정하기 어렵다고 하는 주장이 깔려 있다.
 

하지만, 대일강화조약은 제11조에서 일본국은 극동 국제군사재판소 및 일본국내 및 국외의 타연합국 전쟁범죄 법정의 재판을 수락한다Japan accepts the judgments of the International Military Tribunal for the Far East and of other Allied War Crimes Courts both within and outside Japan라고 규정하고 있다. 전쟁범죄는 말할 것도 없이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제국에 대한 침략을 말한다 

아베나 시모무라가 동경재판사관재검토한다면, 논리적으로 생각해도 정부의 입장에서 이 재판의 무효를 선언하고 동시에 일본과의 강화조약에 서명한 세계48개국에 조약  파기에 대한 통고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어리석은지, 아베로 상징되는 일본의 극우 역사수정주의자는 이해를 못하는 모양이다. 

그들은 침략의 사실을 완강히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자존자영의 전쟁이라고 우기며,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자학사관이라고 비난한다. 게다가 교과서를 통해 종군위안부나 난징학살의 사실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도 집요하게 방해를 계속하고 있다. 이러한 세력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는 것은 일본의 민주주의와 국제적인 신뢰에 있어서도 큰 위협이다. 동시에 이것은 아시아를 비롯한 국제사회에 대한 도전이기도 한 것이다. 

이 극우 역사수정주의자들의 도전에 맞서, 세계는 반격함과 동시에 아베가 한걸음이라도 외국에 발을 내딪을 시에는 현지에서 항의시위를 하고,  기자회견장에서는 보도관계자들이 앞서 말한 사실들을 확인하는 질문을 해 줄 것을 강력히 원하는 바이다. 이건 아베가 국제적 시야에서 보면 얼마나 자신이 창피한 줄도 모르는, 비열한 존재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하기 위한 가장 유효한 방책일 것이다. 

아베로 상징되어지는 일본의 극우 역사수정주의자는 독일의 네오나치와 마찬가지로 자국민뿐만 아니라 세계의 공통적인 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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